연화사 주변

최영장군 묘

검뎅군 2014. 4. 8. 13:36

 

 

 

 

저희 연화사 가 위치한 곳에서 15분정도 들어가시면 있는 최영장군의 묘입니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 납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최영 장군의 위령굿이 필리핀 참전비에서 펼쳐 지고 있습니다.

 

 

<최영장군의 설명입니다. - 한국 인물사(네이버 캐스트)>

 

풀이 나지 않는 무덤의 주인공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는 최영이 남긴 말로 유명하다. 원래 이 말은 최영의 아버지 최원직이 최영이 16세 경에 죽으면서 남긴 유언이었다고 한다. 원래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았던 최영은 아버지의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이 글귀를 써서 곁에 두고 항상 되새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고위관직에 있을 때도 별다른 청탁이나 뇌물 사건에 휩쓸리지 않았다. 외적을 막고 고려왕실을 보호하며 청렴하기까지 했던 최영은 그래서 온 나라의 백성으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았다. 이성계가 권력을 잡고 나서 존경하는 선배 무장이었고 싸움터에서는 전우이며 그를 장군의 자리로 이끌어준 것과 다름없는 최영을 결국 참형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의 이러한 국민적 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배지에서 개경으로 불러온 최영에게 ‘무리하게 요동을 정벌하려고 계획하고 왕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권세를 탐한 죄’를 들어 참형에 처하려 하자, 최영은 평생에 있어서 탐욕이 있었다면 자신의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유언을 하고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오랜 세월 동안 풀이 자라나지 않았다. 현재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영장군의 무덤에는 내내 풀이 자라지 않다가 1976년부터 풀이 돋기 시작해 현재는 무성하다.

 

민간의 무속 신앙으로 자리 잡은 최영장군의 인기

고려 말기 명장인 최영의 전 국가적 인기는 고려가 멸망한 후 민간의 무속 신앙으로 변모하였다. 무속에서 ‘최영장군’은 수명장수, 안과태평의 신으로, 무에서 가장 많이 모셔지는 신령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외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 최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민초는 최영을 장군신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영장군’ 신은 조선시대부터 한반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숭배받는 신이 되었고, 지금도 한반도 최고의 장군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매년 음력 5월 단오날에 부산 자성대에 있는 사당에서 '최영장군제'가 열리고 있고 전국 곳곳에 최영장군을 모시는 굿당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출처 : 인물 한국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740 >